제3과 한국의 천주교
제 3 과 한국의 천주교
<학습 목표> 1. 세계와 한국 천주교의 개괄적인 역사를 안다.
2. 순교자들처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로 다짐한다.
3. 천주교의 세계적 일치와 보편성을 확인한다.
<도입> 천주공경가 : 천진암 강학회의 시조인 이벽이 지은 글 : 생략
<들어 봅시다>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. : 생략
<시작기도> 성모송
<교리 풀이>
1.천주교의 유래
①천주교 : AD 30 육화된 성자(예수)가 예루살렘에서 세우신 교회
②예수 승천 후 (12사도와 바오로사도 중심) 시리아, 그리스, 로마, 이집트 전파.
③로마황제 숭배 거부(다신교, 제정일치)→ 300년간 박해→ 신앙의 자유(313) → 로마의 국교 (380)→ 유럽 제국의 종교→ 신대륙 발견, 세계의 종교
※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 비잔티움 천도(→ 콘스탄티노풀→ 이스탄불, 330: 교황은 로마에 잔존). 395년 데오도시우 황제 사후 장남(아르카디우스)는 동쪽 로마, 차남(호노리우스)는 서쪽을 통치케 한 것이 동,서로마 분리의 단초가 됨.
(동방정교회의 분리의 단초이기도 함).
④2천 년 간 서구 문화와 문명의 토대→ 학문과 예술에 공헌.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→ 세계 평화와 인류애의 증진에 기여.
⑤2010년 말 전 세계 신자 수 : 1,195 백만 명 (전 세계 인구 68억의 약 17.5%)
2. 한국 천주교 시작
①임진왜란, 병자호란은 서양식 무기와 전술에 대한 조선(유교사회)의 무능의 노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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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래 |
한국보다 |
선교사 |
한국침략 |
전래~전쟁 |
일본 |
1549년 |
235 년전 |
예수회 F. 하비에르 |
1592년 임진왜란 |
43년 |
중국 |
1583년 |
201 년전 |
예수회 마태오 리치 |
1636년 병자호란 |
53년 |
한국 |
1784년 |
0 |
자생적 전교 |
(병자호란 148년 후) |
→ 반성(과학의 필요성)→ 실학파 등장 (광해군 때 이수광이 천주실의를 공부하고 지봉유설에서 서양문물과 천주교 소개 1614년) → 반계 유형원, 성호 이익,
※마태오 리치 신부가 1603년경 한문으로 된 천주교 교리책 (천주실의) 발간
② (경기 광주) 천진암 강학회 (22대 정조 3년, 1779년--지봉유설 165년 후)
남인 실학자(이벽, 권일신, 권철신과 문하생인 정약전⑵, 정약종⑶, 정약용 요한⑷) 들이 서학연구 중 ‘천주실의’를 공부하면서 우주의 진리를 발견하고 실천 : 조과 만과, 주일 단식과 파공(음1,7,14) -- 5 년간 : 책에만 의존한 신앙생활로는 불만족 →
③ 정약용의 매부 이승훈 북경 파견 후 영세 (1784) : 한국 천주교 원년
※원년 이견 : ⑴임진왜란 소서행장(아우구스티노)이 페르데스 신부와 전쟁 포로와 고아등 2천명에게 세례 후 일본으로 데려감. ⑵천진암 강확회 주장
④ 한국 천주교 초대교회
•최초의 교회 : 명례방 中人 김범우 집→양반은 방면, 김범우는 귀양 중 사망 (원년 다음 해) 최초의 순교
•가 성직자 시대 (2년간) : 주교 (권일신), 신부 (이승훈 등 10명)
•북경교구에 질의/회신 (원년 6년) : 가성직 제도와 조상제사 금지
•북경교구로 소속되어 (원년 8년) 주문모 신부 파견 (원년 10년→7년 후 순교)
•23대 순조 때 정하상 바오로(정약종의 2남)의 교황청 탄원서로, 조선교구 설정 및 파리외방선교회 담당(엄격한 전례, 제사금지를 주도한 수도회) (원년 47년)
※ 세계에서 유일한 자발적 전교 ↔ 군사력을 동반한 강제 전교(남미 등)
3. 천주교의 가르침과 유교사상의 충돌 → 박해
①반상구별 철폐 : 군사부일체라는 유교의 이념과 양반위주 국가체제를 부정
②조상제사 거부 : 인륜을 모르는 패륜집단이라는 빌미를 제공
③남녀구별 무시 : 음탕한 집단으로 낙인
④매국노 : 외국신부 영입과 박해사실의 본국 보고
⑤정치적 목적 : 사색당파 싸움에서 보수세력이 진보세력인 남인을 공격하기 위한 구실로 이용. (진보세력에 천주교인이 많음)
4. 천주교 박해와 신앙의 자유
①전라도 진산사건(현 충남 금산) (원년 8년) : 신주를 소각한 정약용의 외사촌들인 윤지충, 권상연이 처형되고, 천주교 박해로 발전(신해박해 :권일신 유배중 사망, 이승훈 평택현감 파직)
박해 |
시기 |
정치적 원인 |
주요 순교자 |
성인 |
신유박해 |
1801 순조(정순왕후=영조 계비) |
기존 권력층(북인 벽파)가 진보파(남인 시파) 박해, 5가작통법 |
주문모신부, 정약종, 이승훈, 이가환, 권철신 등 500여명 순교. 정약용과 정약전 유배, 황사영 백서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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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해박해 |
1839 헌종 |
풍양 조씨(벽파)가 안동 김씨(시파) 박해 |
앵베르범주교, 샤스탕신부, 모방신부, 정하상과 누이 정정혜 등 박해 |
67명 |
병오박해 |
1846 헌종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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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대건 신부외 10여명 순교 |
9명 |
병인박해 |
1866~10년간 고종(흥선대원군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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프랑스인 주교2, 신부5, 신자8,000명 |
17명 |
②4대 박해
③박해 → 교우촌 형성, 사기막골, 숯골 등 지명, 公所제도, 사발통문.
④신앙의 자유
• 일본과 병자수호조약(1876)
• 미국, 영국, 독일과 조약(1882) : 개신교 전래(순교자는 6.25 때 비로소 생겨났고, 따라서 순교성지도 없다)
• 한불조약(1886) : 천주교 탄압 종료: 103년간 10,000여명 순교 (세계 3위)
• 1984 (한국천주교 200주년) 여의도에서 요한 바오로 23세 교황님 주재로 103명의 한국성인 탄생.
5. 오늘의 한국천주교
①직접적인 복음선교 활동, 사회복지 활동, 사회정의 수호와 인권옹호 활동
②2012년 말 교세 : 신자 536만 명 (남한인구 5,188 만 명의 10.3%), 본당 1,664 공소 796, 신부 4,754명, 주교34
<정리> 읽기
<다짐> 신앙 선조들의 모범을 따라 이웃 선교
<알아 둡시다> 하느님/하나님 (우리나라만의 문제)
(천주교) 하느님: ‘하늘’+‘님’ = 하늘님 → (한글 맞춤법에 따라) 하느님
(개신교) 하나님: ‘하나’+‘님’ :하나님, 둘님 등 숫자에 존칭접미사 ‘님’을 붙이면 안됨.
※ 야훼 하느님 ⇔ 여호와 하느님 (히브리어는 자음만)
★최양업 토마 신부님 가족의 박해사례
최양업 신부님은 1836년 15세 때 김대건 신부님과 함께 신학교 입학을 위하여 중국으로 떠났다. 마카오 신학교에 입학하여 부제품을 받고 귀국하기 위하여 애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1849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, 귀국하시어 12년 간 전국에서 사목활동을 하시다가 과로로 문경지방에서 돌아가신다.
최양업이 떠난지 3년 후인 1839년 과천에서 공소회장을 하시던 아버지 최경환 방지거와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후, 아버지는 먼저 옥사하고, 어머니는 수 개월 후 당고개에서 참수당하였다. 장남인 최양업 신부의 밑으로 동생이 5명이었는데, 3세, 5세, 7세, 9세,12세로서 차남이 야고보이었다. 동생들은 부모가 옥에 갇힌 후 구걸로 연명을 하였든데 그 가운데서도 음식을 사서 옥에 넣고는 하였다. 어머니의 참수형 날자가 확정되자 야고보는 옥사자장에서 들은 회광이를 찾아가 구걸을 하여 만든 돈 주머니를 주면서, “이러이러한 죄수는 우리 모친이니 칼을 잘 갈아 행형하되, 각별히 조심하기를 청하였다.” 회광이도 감탄하여 당고개(서울시 용산구 신계동, 용산구청에서 성산감리교 일대)에서 참수할 때 장난질을 치지 않았다.
★추가 시복시성 추진운동
※103위 성인(1984년 시성): 신유박해 이후 입국한 파리 외방선교회 사제 10위(주교3,신부7), 한국인 순교자 93위(김대건 신부1, 기해박해 이후 평신도 순교자 92위 ) 초기 성조와 신유박해 이전 순교자 누락
①2014년 시복 예상자 :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
②증거자 2위 : 최양업 토마스 신부, 김범우 토마스 : 기적심사 필요
③2차 시복시성 추진 : 이벽 요한세례자와 동료 순교자 132위
④3차 시복시성 추진: (근현대 신앙증인)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